고양신문, 자연은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디자이너

 
 

 

“자연은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디자이너”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 어린이·청소년 디자인 교실 열어

 

 
 

자동차 디자인 대가 박종서 관장 직접 강의 원당마을행복학습관·고양신문이 함께 진행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 디자인 수업에서 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중인 박종서 관장.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 디자인 수업에서 학생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중인 박종서 관장.

 
 
 
 

“자동차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그림과 도면은 언어예요. 그림을 그려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걸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요.”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에 자리한 ‘포마(FOMA) 자동차디자인 미술관’에서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 교실’을 진행한 박종서 관장이 첫날 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원당마을 행복학습관과 고양신문이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청소년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3일 동안 직접 교육을 한 박 관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 1세대로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25년간 근무하며 소나타와 티뷰론, 산타페 등 혁신적인 모델을 선보였으며, 국민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자동차 디자인 수업 첫날, 곡선의 세계에 대해 설명 중인 박종서 관장

자동차 디자인 수업 첫날, 곡선의 세계에 대해 설명 중인 박종서 관장

첫 시간, 학생들은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작은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하는 박 관장의 지도를 받아 강의실 책상에 준비된 대형 도화지를 마주하고 앉았다.

“자연은 모두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요. 특히 자동차의 세계는 거의 곡선으로 이뤄지죠. 자동차처럼 달리는 것을 그릴 때는 흔들림 없는 곡선을 그려야 합니다. 곡선을 그릴 때는 팔목과 팔꿈치, 어깨, 그리고 내 몸을 이용해서 그려보세요.”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크고 작은 곡선 그리기 연습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이용해 한 번에 거침없이 선을 그리는 연습도 했다.

 

둘째 날, 박 관장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인은 자연”이라며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하기 전에 자연을 세세히 잘 관찰하기를 권했다. 학생들은 박 관장이 자연에서 직접 준비해온 나뭇잎을 찬찬히 관찰하고 자세히 그리고 난 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자동차도 그렸다. 엄마의 화장을 도와주는 승용차와 선루프가 열린 스포츠카에서 버스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셋째 날에는 갈대 잎과 줄기를 만져보고 관찰해 그림을 그린 후 갈대 잎으로 배를 만들었다. 박 관장은 갈대배를 손에 들고 “거칠면서도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그러면서도 꺾이는 법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갈대로 만든 작은 갈대 배가 이 시대의 모든 배 디자인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자연 속에 가장 완벽하고 가장 훌륭한 디자인이 있다”는 박 관장의 디자인 철학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자동차디자인 수업에서 곡선 그리기를 연습 중인 청소년들.

자동차디자인 수업에서 곡선 그리기를 연습 중인 청소년들.

 
 디자인 교실 둘째 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청소년들과 그림 지도 중인 박종서 관장.

디자인 교실 둘째 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청소년들과 그림 지도 중인 박종서 관장.

디자인 교실에 참가한 학생들은 수업 후 담당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을 둘러보기도 했다. 교육에 참가한 이서진(중1)군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평소에도 자동차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큰 곡선을 한 번에 그려보면서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박성용(초5년)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수업을 너무 재미있어 했다. 참 좋은 기회였다”며 또다시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림 공부를 할 때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연습을 했다는 박 관장은 수업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곳에서 배운 대로 기본에 충실하게 연습을 많이 하라”고 강조했다.

박 관장은 교육 과정 내내 열정적인 전문가로, 때로는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학생들을 대하며 참가자들에게 디자이너로서의 꿈과 열정을 심어주고자 했다. 교육을 마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종서 관장은 “어릴 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경험을 다양하게 하면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 강의를 하게 됐다“고 답했다.

국내 최초의 사립 자동차디자인 전문 미술관인 포마에서는 국내외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와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전시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현재 젊은 디자이너들의 기본기와 창의력 향상을 위한 전문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갈대를 관찰하고 그리기를 손수 보여주고 있는 박종서 관장.

갈대를 관찰하고 그리기를 손수 보여주고 있는 박종서 관장.

 

기사출처 > 고양신문 > 원문링크

 

자동차 디자이너 박종서 Sellv.

 

자동차 디자이너 박종서 / 반평생 해온 디자인의 핵심은 설득이었다.

아반떼, 쏘나타, 싼타페를 디자인 한 자동차 디자이너 박종서 실패를 무릅쓰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의 '도전'을 소개합니다 지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면, 셀레브 - sellev.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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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 ‘Basics, nature are key to iconic auto designs’

[Eye] ‘Basics, nature are key to iconic auto designs’

 

Korea’s first car designer and creator of Hyundai’s Tiburon and Santa Fe, Park Jong-suh, reconstructs cars as a form of art, connecting the past and future of automobile design

 
 
 

Park Jong-suh, 70, had never thought of becoming a car designer.

In his childhood, cars had been his favorite like other boys, though in the postwar era of the early 1950s, they often had to pretend rubber shoes were vehicles as an alternative to toy cars.

Twenty years later, Car Styling magazine in Japan would publish a set of his drawings and artwork, completely changing his life.

“I was offered to work with Hyundai Motor in 1974 when somebody in the company saw my work from the magazine. I think I was destined to work at Hyundai (as a car designer),” said Park who was then a designer at a local electronics company. “Nothing is stronger than the power of destiny.”

 
 
 
 

South Korea’s first auto designer Park Jong-suh speaks at FOMA, Goyang, Gyeonggi Province, where he displayed bodies of classic cars from Ferraris to the Hyundai Pony, recreated in metal and wooden frames, Monday. (Park Hyun-koo/The Korea Herald)

 
 

The year 1974 was one year before Hyundai Motor, then a tiny carmaker, built the first Korean-developed automobile, Pony.

The hatchback compact car opened the door for Hyundai to grow, but on the other hand, most of it was not made in Korea.

Pony originated from Hyundai Motor, now the world’s fifth-largest carmaker, but the car itself was a mere collaboration of foreign technology and funds at that time, with a design from Giorgetto Giugiaro of Italdesign, transmission and engine from Mitsubishi, machine press from France and funds from Barclays Banks.

After the launch of Pony, the mission Park faced was clear: Create the design identity and originality of the South Korean carmaker.

But there was nothing to learn about automobile design in Korea, simply because there was no such course available. Park left for the Royal College of Arts for a yearlong course -- his first proper education on car design. He was the first Korean to attend the British school.

After years of self-learning, Park’s first design, Hyundai’s Scoupe, hit the market in 1990. However, he was still unsatisfied.

“We felt so embarrassed when we had to present our works at motor shows because everyone participating in the shows were better than us,” he said. “Hyundai was not good enough to take the lead at that time. The carmaker lacked engine technology. … But design was what Hyundai could do better.”

In 1992, his concept car titled “HCD 1,” a two-seat sports vehicle with a bold design, won the best concept car award at the Detroit Motor Show. Feeling more confident, Park successfully presented Tiburon in 1996, another sports car, and the sports utility vehicle Santa Fe in 2000.

Sonata was a hit, helping Hyundai gain more presence in the global market in the 1990s.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 to South Korea’s automobile industry, he received a presidential merit in 1993 and the Brass-Tower Industry Prize in 1999.

 
 
 
 

Though Park had no predecessor in his home country in terms of auto design, nature has always been his teacher and inspiration.

The two vehicles, Tiburon and Santa Fe, famous for their bold curves and volume, were inspired by photography of masculine whales jumping from the sea of Alaska, he said.

“People today believe that they can do anything with computers. But in order to design an excellent car, you need to go back to the basic, by observing the beauty of nature and the form the nature produces.”

Park’s career as the head designer of Hyundai Motor ended in 2004, due to his health.

Shortly after his retirement, he hit the road to meet Italian artisans who create original bodies for commercial cars. The former vice president of Hyundai’s design institute said he was shocked at discovering the aesthetic curves of cars like Ferrari were created not by drawing on paper or computers, but by artisans striking hammers on metal plates for years.

“I discovered, after spending years as car designer, that the cars of excellent designs were born by sheet metal molded into the curvaceous shapes and lines of our imaginations. I wanted to let my junior designers know that even in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hich is said to be propell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nothing can go beyond the creations of human senses,” he said.

Park’s discovery in Italy led him to open a private museum on cars and arts in Goyang, Gyeonggi Province.

 
 
 
 

A 1,300 meter-square building, named Form of Motors and Arts, or FOMA, is Park’s new studio, arts school and gallery for his collection of cars and designs inspired by the nature. In the museum, Park placed not only the Tiburon repainted in chameleonic green but also the Pony in a wooden frame.

Reproducing the car bodies is his way of rediscovering the beauty of car as an art form and proving his belief that such art forms came from nature.

“If FOMA becomes a place where young designers get inspiration and become creative, I would want nothing more,” said Park, who built the museum with $5 billion won of investment from his own pocket.

“This is also a place for children so that they can think out of box, get more creative and learn something other than what textbooks teach.”

Amid the fast evolving car industry through the development of technology, Park said car designs should become more simple and better portray the designs of nature.

“I think cars today have too much unnecessary design and functions. The era of modernism is reaching an end. Simplicity will prevail in the new world and Hyundai Motor has to understand this in order to produce iconic cars.”

Asked if he has ever given advice to Hyundai Motor’s de facto heir Chung Eui-sun, Park said he would be more than willing to, adding that the vice chairman often visits FOMA.

“He is a listener,” said Park, noting that Chung is a humble man who deliberately asks questions.

“I see Hyundai Motor’s future in him, he is ready to embrace the change.”

By Cho Chung-un (christory@heraldcorp.com)

 

그가 찾는 아름다운 것들 Autotag.kr

 
 

국내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 역사는 1세대 디자이너인 박종서 디자이너의 인생을 보면 새롭게 보이곤 합니다. 그가 합류 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는 마치 새하얀 도화지와 같았습니다. 그가 어떤 그림으로 그 역사를 그려냈는지 오토태그에서 확인해보세요.

 
 
 
 

공예 전공자에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박종서 관장이 대학을 다녔던 6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되는게 많았습니다. 미국의 타임지가 수입되어 들어왔지만,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은 사진과 사회주의 사상 이야기 등은 모두 검은색으로 지우고 유통 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내 기업에서 수채화 물감을 만들어 ‘피카소’라 이름을 지었는데 제품을 판매 하지 못하게 했었어요. 피카소가 사회주의였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에서 그 물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던거죠. 그런 시절에 Industrial Design 잡지를 삼각지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 잡지를 처음 접하고, 미국의 지인을 통해 구독 신청을 해서 받아보게 되었죠. 그런데, 그 잡지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Presentation.

 
 

“지금은 이 단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오히려 한글로 어떻게 번역할지 당혹스러운 단어인데, 그 당시에는 사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였죠. 겨우 찾은 것이 present 의미인 ‘선물, 제시하다’였어요. 그 외에도, clinic, evolution 등과 같은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잡지에서 나왔어요. 잡지를 읽고 있으나, 읽지 않은 것처럼 찝찝했어요.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rendering이란 단어도 그 잡지에 나왔었는데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 단어들의 뜻을 알게 된 시기가 참 묘해요. 어느 전자 메이커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KOICA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본 JICA (국제 협력 기구)에서 진행하던 개발 도상국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우리나라는 그 당시 후진국이었고, 일본은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UN 자금으로 JICA에서 Industrial Group Training Course를 운영했어요. 그 과정을 듣기 위해 시험을 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저 혼자 합격하여 그 과정을 참여하게 되었죠. 그 곳에서 presentation, rendering 등 그 동안 잡지책에서 봤던 단어들을 모두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 이미 일본은 제품을 평가할 때 프로세스가 짜여 있었어요. TOSHIBA, HITACHI, HONDA, BRIDGESTONE 등의 브랜드가 서양에서 그런 교육을 받아들여서 회사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시절이에요. 저는 그런 것들을 Industrial Design 잡지에서 봤던 내용인데 현장에서 입증되고 알게 되니 신나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저를 일본 JICA에서 재조명하여 기사를 싣게 되었어요. 그 때 실렸던 기사를 보고 현대자동차에서 연락을 하여 입사하게 되었죠.”

그렇게 박 관장은 “자동차가 먼저 찾은 남자”가 되어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자동차 제조 및 디자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현실을 인지한 박 관장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동차 인사이트를 키우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여행을 통해 우리나라는 점차 ‘진짜’ 자동차를 알아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제가 방문했던 곳 중의 한 곳이 영국의 Albert Museum이었어요. 그 곳에서 Ford 브랜드가 전시를 하고 있었죠. 전시장 안에는 처음 보는 클레이 모델이 있었어요. 그 모델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그것이 클레이인지 알지도 못하고 신기해 바라보고 있었죠. 그 클레이 모델의 바닥에 묻어 있던 클레이 일부를 떼어 한국에 가져왔어요. 그 후, 연구를 시작하니 그것이 클레이 모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현대자동차가 클레이 모델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RCA와의 인연

 
 

한국인 최초로 영국왕립예술학교(이하, RCA)에서 교육을 받은 박 관장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회자에 또 하나의 회자를 최근에 더하게 됩니다. 얼마 전, RCA 디자인이 100년이 되던 해 박 관장을 연사로 초대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한국인 최초로 RCA를 다닌 사람인 동시에 한국인 최초 연사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RCA에 다닐 때 아들이 4살 이었어요. 그 당시 국제전화 비용이 너무 비싸고 잘 들리지도 않아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편지 뿐이었죠. 그래서 영국에 예쁜 꽃들을 보면 편지 봉투에 꽃씨를 함께 한국에 보냈어요. 아들이 그 꽃을 한국에서 키우며 자랐었죠. 근데, RCA에서 강의를 하는 날 제 아들과 며느리가 그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시절이라 강의 할 때도 청중으로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강의 때 하니 모두 탄성을 지르더라구요.” (웃음)

“강의 주제는 제가 겪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어떤 디자인이든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다고요. 저는 인생을 살며 그것을 깨닫지 못해 거꾸로 사는 물구나무 선 인생을 살았죠. 자연과 관련해서는 제가 좋아하는 인용구가 있어요. 포토그래퍼라는 잡지에서 봤던 인용인데, ‘Everything has its own beauty, but it doesn’t appear to everybody.’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아무에게나 보여지는게 아니다.’라는 의미에요. 알고 보니 이게 동양철학의 공자님 말씀이더라구요. 제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와서 거꾸로 살았다라고 강의를 전했죠.

그렇게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는데, 강의시간보다 질문 시간이 더 긴 거에요. 그들은 질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어요. 제가 짧은 영어로 질문을 알아듣고 답을 잘 해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질문까지 왔는데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을 받았어요. “자연에서 배워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당신이 디자인한 사례를 이야기 해달라”고 물어보는 거죠. 외국에서 자료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뻥 졌다가 문득 예전에 보았던 바이올리니스트사라 장의 인터뷰가 떠오르는 거에요. 사라 장도 질문은 받은 상황이었는데, 어떤 곡을 무대에 올릴지 누가 선택하냐는 질문이었죠. 당신, 당신의 어머니, 매니저, 당신을 초청한 그룹 중 누가 곡을 정하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사라 장이 답하기를, “나는 누구의 도움으로 곡을 선택하지 않는다. 나에게 emotional attachment가 된 곡을 무대에 올린다.” 즉, 정서적으로 나와 부합된 곡을 사용한다라는 거죠. 자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그 자연에 있는 어떠한 것의 디자인을 똑같이 따오는 것이 아닌거죠.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내 몸 속에 emotional attachment가 들어와서 색다른 디자인이 나오는 거죠. 와인을 마시면 내 몸에 와인이 들어와 신경을 자극해 즐거워지고 아름다워지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아요.”

 
 

His emotional attachment

 
 

“보이지 않는 색을 찾아내고 싶어요. 우리가 자연에서 보는 색을 실제로 표현하지 못하는 컬러가 있어요. 가을의 옻나무가 그 예가 될 수 있죠. 옻나무의 잎이 여러 개 있는데 하나하나 잎의 컬러가 다 달라요. 옻나무를 뒤집어서 보면 얇은 솜털 같은 게 있고, 컬러가 정말 예뻐요. 실제로 사진으로 찍으면 똑같은 색깔로 구현하기 어려워요. 이렇게 우리 인간이 구현하기 어려운 컬러가 있는데, 자연에서 그런 컬러를 찾아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는 산책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도 자연의 움직임과 아름다움이 눈에 잘 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많이 노출되어 만지고 느끼고 보았던 박 관장. 현 세대가 말하는 아이들의 ‘촉감 교육’이 박 관장의 어린시절에는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놀며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은 여전히 몸과 정신이 그 자연을 기억하고 있으며 현 세대도 그 기억을 함께 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자동차 디자인 박물관 ‘포마’ (FOMA) 설립 비하인드 스토리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귀신처럼 차를 만들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어요. 쥬자로(Giorgeto Giugiaro)가 파스텔로 그린 차의 그림(rendering)만을 참조로 모델 제작을 위한 실물 크기의 상세 도면을 한 장의 종이에 완벽하게 표현하는 그들의 능력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인지 신기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가서 그 시스템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마침 지인 교수가 미국에서 열렸던 자동차 전시 관련 책을 보내줬어요. 그 책을 보면서 나도 이런 전시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아무 뜻 없이 만들고 있었는데 ‘지인들이 이걸 다 어디에 두려고 하는거야?’ 라는 질문에 운명적으로 포마를 짓게 되었어요.” 포마를 지을 때도 자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던 박종서 관장. “Eco-Friendly(자연친화적), 에너지 절약, 제 3의 에너지는 단열이다! 이 세 가지 키워드로 포마를 지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을 하면 수익이 생기지 않으니깐 유지비가 적게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열을 차단하고, 물이 없으니깐 빗물을 사용하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일으키고, 태양열로 온수를 만들고, 태양빛을 끌어드려 자연광으로 어둡지 않게 했어요. 이 건물은 땅 밑까지 단열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한 여름과 겨울에도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16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이 큰 박물관의 전기요금이 16만원밖에 나오지 않으니깐, 저희 집 아파트보다 여기 전기요금이 적게 나와요. (웃음) 다만, 자연의 바람만 이용을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워요. 풍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포마’라는 이름을 가지기까지

 
 

포마 이름은 Forms of Motors and Arts의 줄임말이다. 자동차 디자인 박물관 혹은 미술관으로 알려져있지만 영어 이름을 보면 어디에도 그런 말이 적혀 있지 않았다. 어떤 이유일까? “제가 이런 박물관을 짓는다니깐 이탈리아 장인들이 이름을 지어주는게 “자연으로부터 자동차까지”라는 이름이었어요. 이름이 너무 길어서, 제가 추구하는게 자연의 형태에서 오는 인위적인 형태이다 보니, 자연스레 Forms라는 단어가 들어갔어요. 또, 저는 예술 하는 사람들이 디자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Art라는 단어를 뺄 수 없었죠.”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전하고픈 말

 
 

“지금의 디자이너가 된 사람들, 대학생, 중고등학생들이 이미 손을 안쓰는 버릇이 되어있어요. 손이 더러워야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손이 너무 깨끗하죠. 그림을 안 그려도, 디지털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나뭇가지를 꺾어서 그려보라고 하면 징그러워서 못 만지는 아이들이 있어요. 경력 직장인들이 용접기에 불을 못 켜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전기 나가면 살 수가 없을 정도에요. 대학 입시 위주로 되어 있는 교육 시스템이 안타깝죠. 학생들 보다 부모들을 상대로 설득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요. 아이들 가슴 속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끄집어 내야 해요. 글로벌 시대이니깐 어학으로도 무장을 해야해요. 그래서 엄마들을 향해서 전쟁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타는 차와 요즘 자동차 이야기기

 
 

“2004년에 구매한 갤로퍼, 2004년식 벤츠 CLS, 아우디 Q3를 타고 있습니다. 갤로퍼와 아우디는 용도에 맞게 사용하기 편해서 선택했고, 벤츠 CLS는 디자인이 좋아서 타고 있습니다. 요즘 차를 보면 차체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요. 그 한 예가 혼다 CIVIC이죠. 옛날에는 작은 차하면 CIVIC 이였는데 CIVIC 모델이 나이가 들면서 커지고 있죠. 필요 이상의 오버 액션이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환경적으로도 제한적인 공간에서 자동차를 위한 공간을 공유해야 하니 차체는 작아지는게 좋죠. 또한, 1인 가구가 늘면서 탑승객도 줄어 들고 있으니 개인적인 바램은 차들이 작아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건 그는 역시 자동차와 자연을 결부하여 생각한다.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먼저 깨달은 그는 어느 누구나 가까이 있는 자연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더 늦기 전에 현 세대가 물구나무 인생을 살지 않기를. 그래서 포마 박물관에는 자동차 이야기와 자연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그 이야기를 관장이 직접 전해줄 때 더 빛을 발하니 문의 후 방문해 보시길 추천한다.

 
 

기사출처 > 자동차오너들의 즐겨찾기, autotag.kr

모터매거진 _자연에서 찾은 미학

 
 

지난 6월 경기도 고양시에 개관한 FOMA(Form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자동차 디자인을 완성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지금 자동차 디자인은 진정 아름다운지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혹시 소라 껍데기를 자세히 보신 적이 있나요? 쉽게 깨기 어려운 최적의 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최적의 구조입니다.”

박종서 관장이 차체를 칭하는 용어 ‘Shell’을 설명하며 한 말이다. 하나로 이어진 소라 껍데기가 연한 살을 지키고, 그것을 모방한 것이 결국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관 곳곳에 전시된 곤충 표본이나 앵무조개 껍데기 모형, 단풍나무 씨앗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이라는 곳에 자연물은 어딘지 어색했다. 멋진 슈퍼카의 파츠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박종서 관장은 대답을 이어갔다.

“자연물은 1.62의 질서, 즉 황금분할을 품고 태어납니다. 조개껍데기, 식물의 형태 등을 잘 관찰하면 1.62:1의 법칙을 찾을 수 있죠. 자연을 아는 것이 디자인의 시작입니다. 이미 완벽한 형태니까요. 자동차 디자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경험을 나누는 공간

 

현대차 디자인연구소장을 거쳐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을 지닌 박종서 관장이 미술관을 세운 이유가 궁금했다. 1500m²에 이르는 부지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부터가 커다란 도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 설계도를 구하려 했어요. 이탈리아까지 찾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오랜 전통의 자동차 디자인 공방 ‘카로체리아’를 방문했더니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테스타로사는 철사로 만든 곡선을 이용해 디자인한 차였어요. 설계도면은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습니다.”

현대차에 근무하면서도, RCA(영국왕립예술학교) 유학 중에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과정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국민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시동만 걸면 금방이라도 달릴 것 같은 차는 그래서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 대신 테스타로사와 아우토 우니온(현재의 아우디) D타입, 포니 등의 목형과 스포티지의 클레이 모델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박종서 관장의 연구물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자동차 디자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지금의 자동차 디자인은 개성을 잃었어요. 컴퓨터로 디자인하기 때문에 모두 비슷합니다. 반면 20세기 초반의 차는 부족함 속에서 찾은 풍요로운 결과물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디자인이 많았죠. 이제 속도는 의미가 없어질 거예요. 느리되, 부드럽게 달리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럼 예전처럼 과장되지 않은 자동차 디자인, 고유한 개성이 있는 자동차 디자인 시대가 돌아올 겁니다.”

 

보고 만져야 창조한다

 

박종서 관장은 산타페, 스쿠프, 티뷰론은 물론이고 현대차의 엠블럼까지 디자인한 이력이 있다. 국내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굵직한 선을 남긴 박종서 관장이 세운 곳인 만큼, 특히 자동차 디자이너 지망생이 방문한다면 생각해볼 바가 많은 곳이다. 좋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스케치와 클레이 모델을 먼저 배우고 CAD를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초단계가 생략됐습니다. 선 하나를 그어도 자신 있게 뻗을 줄 아는 손이어야 합니다. 컴퓨터 모니터로 하는 디자인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박종서 관장은 또한 유럽에 간다면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동차박물관, 독일 뮌헨의 국립 독일박물관과 비행기박물관을 찾기를 권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전시물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테스타로사 설계도를 구하려고, 포니의 목형을 제작하려고 곳곳을 찾아 헤맸다는 박종서 관장.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그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의 창고이기도 하고, 자동차디자인의 미래를 제안하는 곳이기도 했다.

 
 
 

자동차 디자인은 예술이다.

 
 
 [이데일리 오토in 김하은 기자] 현대자동차 디자인을 이끌던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현대차 퇴사 이후 이탈리아 까로체리아의 세계를 경험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원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그리고 최근 그는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새로운 길에 섰다.

[이데일리 오토in 김하은 기자] 현대자동차 디자인을 이끌던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현대차 퇴사 이후 이탈리아 까로체리아의 세계를 경험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원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그리고 최근 그는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새로운 길에 섰다.

 
 

박종서 관장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산자락에 위치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으나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길이 아파트 단지 공사장과 엉켜 있어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갈 수 없었다. 공사장을 통과해 산자락 오솔길을 지나며 마치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 역시 난청을 호소할 정도.

그렇게 오솔길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순간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FOMA(Form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하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이미지의 미술관은 1,487㎡ 부지에 1층은 전시장, 작업장, 2층은 집무실과 연구실로 꾸며져 있다.

 
 
 미술관 전시구역에는 박종서 관장이 망치를 들고 직접 두드려 만들었다는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를 비롯해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티뷰론의 콘셉 모델이었던 HCD-1 모형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박종서 관장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기자를 환영했다.

미술관 전시구역에는 박종서 관장이 망치를 들고 직접 두드려 만들었다는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를 비롯해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티뷰론의 콘셉 모델이었던 HCD-1 모형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박종서 관장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기자를 환영했다.

 
 

무언가 가치를 남기고 싶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 미술관의 설립 이유가 궁금했다. 박종서 관장은 “다들 디자인 스튜디오를 세우거나 교수 생활을 유지하지 왜 미술관을 세우냐고 질문했다”라며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듯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언제나 볼 수 있는 완성된 멋진 자동차가 아니라 디자인의 영감을 얻고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걸 구현하는 과정과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후학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족들의 의견도 큰 힘이 되었다. 박종서 관장의 아내 역시 ‘우리는 돈이 아닌 가치를 남기는 것이 좋다’라며 미술관 설립에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이에 50억이라는 큰 규모를 투자할 수 있었고, 미술관 관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산업 디자인의 가치를 느끼다.

박종서 관장의 전공은 사실 산업 디자인이나 자동차 디자인이 아닌 ‘공예’다. 그는 “사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며 웃었다. 사실 그는 조각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잠시 후 박 관장은 “그런데 사는 게 모두 생각하고 예상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언젠가 삼각지 미군 부대 인근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잡지를 우연하게 구했고, 그 잡지를 보면서 산업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알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업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독학으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고 습득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그때 현대자동차 역시 차량 제작 기술 등에서 한국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외부에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회사 내에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

박종서 관장은 현대 입사 후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유학을 떠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대에 입사를 하니 디자인에 관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해외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 영국에 출장을 가서 한 박물관에서 클레이 모델을 처음 보게 되었고,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현대차에서도 ‘선진화된 자동차 디자인’의 필요성을 느낀 만큼 박종서 관장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박종서 관장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대해 “학교와 내가 서로를 새롭게 느낀 기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학교에 다닌 만큼 선진화된 디자인 프로세스야 자연스럽게 배웠으나 더 크게 느꼈던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특히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문화, 향유하는 생활, 패턴 등을 함께하고 관찰하며 견문을 넓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도 도움을 받는 상황이다”라며 웃었다. 그는 영국에서을 소중히 생각하며 “한 브랜드를 대표해서 선진화된 문물과 문화를 배웠다는 생각이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곳에서도 ‘디자인은 혼자서 이뤄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을 지휘하며 새로운 수 많은 디자이너들을 해외로 보내 다양한 경험과 지식, 감각을 쌓도록 했다.

강인한 곡선을 추구했던 박종서 풍 디자인

박종서 관장이 현대차에서 그려냈던 차량으로는 스쿠프, 티뷰론, 싼타페 등이다. 그가 그린 현대차 디자인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현대는 엔지니어링으로 크거나 원천 기술이 풍부한 브랜드는 아니었다”라며 “대중적인 엔지니어링 위에 어떤 매력적인 형태를 제공하느냐, 그리고 실내 공간을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하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그는 “타 브랜드와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라며 ‘힘있는 곡선이 돋보이는 고래의 실루엣’을 담아내는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를 회상하던 박종서 관장은 “콘셉 디자인을 그려내고 클레이 모델로 구현하는 건 쉽지만 그걸 양산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며 “당시 현대차의 기술력을 대폭 발전시키며 원안에 가까운 금형을 제작한 엔지니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건 항상 불안하고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라며 “콘셉이 양산화 되는 과정도 걱정되고, 양산된 이후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라는 것 역시 큰 부담이 된다”라며 “이에 실수를 줄이기 위해 늘 엔지니어들과 함께 노력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다”며 웃었다.

자이너로서의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아쉬웠던 차량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 없이 아토스를 떠올렸다. 그는 “아토스는 당초 디자인 단계에서는 초소형 시티밴과 같은 상용 모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마케팅에서는 소형차로 브랜딩을 하고 싶어했고 양산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마케팅, 엔지니어링, 상품 등의 요구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박종서 관장은 그 때 디자인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고 말했다.

한편 박종서 관장은 투스카니도 아쉬움이 남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스카니는 티뷰론과 터뷸런스를 이어가는 경쾌한 감각의 스포츠카 모델인데, 막상 디자인적으로 두 차량을 계승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뷰론 시리즈의 단점이었던 긴 오버행을 대폭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라며 웃었다.

 
 
 
 

현대차와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도전

디자이너로서 일찍 은퇴를 선택한 박종서 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2000년대 초반, 그 때만 해도 난 현대차에 무척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고 또 뇌종양과 같은 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만 두는 것에 대해 고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술 이후 몸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걸 느끼고 싶어서 이탈리아를 찾았고,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을 알게 되었다”라며 웃었다.

그는 “예전에 테스타로사라던가 스칼리에티 등의 도면이나 설계도를 구하려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그런 자료는 없다’라며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며 “막상 까로체리아를 가보니 도면이 없는, 아니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며 까로체리아의 장인들을 마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종서 관장은 “까로체리아의 장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라며 “그 때 난 ’내가 왜 지금 이제야 왔을까?’라는 생각과 ‘영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못 들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충격 그리고 이렇게 늦은 시기에 까로체리아를 방문했다는 것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그는 망치를 들었고, 철사를 엮은 틀 위에서 철판을 두드리며 책상에서는 그릴 수 없는 곡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까로체리아의 장인들은 곡선이 모든 디자인을 결정한다”라며 “그들은 ’직선은 존재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 곡선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곡선의 미학을 그 어떤 브랜드, 어떤 작품보다 아름답게 디자인한다”라며 이태리 자동차 디자인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까로체리아를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은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현재의 자동차 디자인

박종서 관장이 지금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단호했다. “지금의 디자인은 모두 같은 환경에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 간 아이덴티티가 사라지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아래에 디자인이 프로세스의 일부가 되었고, 어느새 그 본질이 흐려진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디자인 역시 예술의 한 갈래’라며 예술적 가치를 위한 고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요새 자동차 디자인은 모두 ‘유행하는 디자인’이다.”라며 “기업으로서 소비자에 비유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가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이끌고 유혹할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디자인을 해야 한다”라며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특히 박종서 관장은 디자인에 있어서 ‘덜어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도 절제해야 아름다운 것이다”라며 “너무 많은 것이 풍족한 이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라면 조금 더 절제하고 덜어내는 디자인을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욕심에 본질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금씩 덜어낼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덜어내는 디자인 중 하나는 차체 크기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닌 차체를 작게 만들되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라며 “지금도 기아자동차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소울의 실내 부품을 모두 제거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더욱 넓은 공간을 가진 차량으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말하다

박종서 관장은 현재의 기업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 당장의 판매도 중요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의 보편 타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장기적인 비전 대신 기업을 운영하는 임원들이 자신의 입신만을 위해 당장의 결과만을 위해 움직이고 그런 틀 속에서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휘둘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입시라는 굴레에 예술마저도 공식화 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요새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물론 많은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타블렛으로 디자인을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라며 “디자이너들은 생산 효율화와 프로세스에 갇히는 바람에 자신이 하는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이를 구현하는 것 역시 너무 성급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은 것만이 아니라 제품을 구성하고 또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품의 본질을 유지하는 기둥이다”라고 말하며 ‘본질적 가치로서의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이 가진 본질에 대해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나 역시도 이 공간에서 더 많은 후학들과 ‘좋은 디자인’의 가치를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FOMA (Forms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 91(Tel: 02-3158-4661)

 

2016.08.24 10:50 | 김하은 기자 hani@ 이데일리

자동차디자인의 미래, 고양시 향동에 둥지 틀다

 

공감, 공간 (1) -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

 
 
 향동 숲속에 자리한 FOMA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자동차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향동 숲속에 자리한 FOMA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자동차디자인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고양의 구석구석에 숨은 매력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첫 여정은 만만찮았다. 화전역을 지나 고양땅과 서울땅의 경계를 타고 향동지구 아파트 공사현장을 통과하니 좁은 비포장 산길이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미심쩍어하며 조금 더 전진하자 산 중턱에 세련된 외관의 웅장한 건물이 불쑥 나타난다. FOMA(Forms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다. 이런 오지(?)에 미술관을 들어앉힐 생각을 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궁금증의 주인공이 기자를 맞는다. 인사치레 따위는 생략한 채 곧바로 전시물 설명에 들어가는 박종서 관장, 듣던 대로 성격 참 쿨하시다.

 
 
 건축물 자체도 미적 가치가 뛰어난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의 외양. 기자가 찾은 날 비가 내렸다.

건축물 자체도 미적 가치가 뛰어난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의 외양. 기자가 찾은 날 비가 내렸다.

 
 

국가대표 디자이너의 꿈과 열정이 결집된 공간

박종서 관장은 25년 가까이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연구소를 이끌며 스쿠프, 티뷰론, 산타페 등의 모델을 디자인한 장본인이다. 그 덕분에 현대는 기술력 뿐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와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국민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박 관장은 교단을 떠난 후 디자이너로 살아온 평생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쏟아 부어 이곳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을 마련했다.

맨 처음 마주하는 두 작품은 박종서 관장의 관심과 테마를 짐작케 한다. 알루미늄판의 표면을 가공해 제작한 ‘갑옷과 자동차’라는 작품은 갑옷을 만들던 이탈리아 공방의 장인정신이 현대의 자동차 디자인으로 연결된 역사를 보여준다. ‘자연의 색상환’이라는 작품은 형태와 색상의 원천을 자연에서 찾고자 하는 박 관장의 경향을 화사하게 대변한다.

로비를 겸한 전시공간의 중앙에는 점토로 만든 스포티지 디자인 모델이, 안쪽으로는 시점의 이동에 따라 표면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컬러의 티뷰론 모델이 전시돼 있다. 벽면에는 단풍나무의 날개열매와 프로펠러의 날개를 나란히 진열했다. 전시물 하나하나에서 영감과 스토리가 샘솟는다.

자연에서 찾아낸 최고의 걸작

계단을 내려가면 넓은 메인 전시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전시물은 의외로 자연에서 찾아낸 디자인의 걸작들이다. 청동과 나무, 합성수지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놓은 소라의 속뼈대는 유연한 곡선과 구조적 견고함을 함께 품고 있다. 앵무조개의 절단면은 자연물의 디자인을 받치고 있는 수학적 신비를 시각적으로 목도하게 한다. 각 칸의 크기가 황금비율로 줄어드는 피보나치 수열을 재현하느라 3D 프린터기의 도움을 받아 치밀한 수작업을 병행했다고. 호랑가시나무잎도 자연에서 찾아낸 최고의 디자인 중 하나다. 누군가 그 형태에 반해 새로운 디자인적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에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조형물로 만들어 천장에 내걸었다. 가장 위대한 디자인의 원형은 모두 자연 속에 숨어있다는 박종서 관장의 설명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포니부터 페라리까지

본격적으로 자동차와 관련된 전시물들을 둘러보자. 1975년 처음 생산된, 국산 고유모델 양산차의 기원이 되었던 포니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청동부조와 동판 아트워크는 물론 손수 제작한 목형도 눈에 띈다. 포니를 디자인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를 몇 번이나 찾아가 복원해 냈다는 원도면도 흥미롭다. 산업화시대를 상징하는 국가적 기념물을 박종서 관장 개인의 노력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1958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는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자동차 외형을 만들었던 옛 방식 그대로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다. 도면 없이 철사의 자연스러운 휨을 이용하여 우아한 곡선을 구현한 페라리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불린다고. 옆에는 1938년형 알파로메오 모델과 1939년형 아우토 유니온 D타입도 다양한 소재와 기볍으로 재현해놨다. 자연에서 찾아 낸 영감을 통해 자동차 외형 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탈리아 토리노의 카로체리아 공방 장인들에 대한 박종서 관장의 샘솟는 존경과 애정이 관람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고 포마미술관을 방문하면 인원수에 상관 없이 박종서 관장이 직접 각각의 전시물에 깃든 생각과 아이디어를 설명해 줄 계획이다.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라는 영예로운 찬사가 따른다는 1958년형 페라리.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라는 영예로운 찬사가 따른다는 1958년형 페라리.

 
 

영감의 산실, 쾌감의 명소

전시공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온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곳 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 머잖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인 전시와 교육의 명소가 되리라는 예감이었다. 전시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진짜 디자인’에 대한 질문에 평생을 바친 한 인간의 열정이었기 때문이다. 박종서 관장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공방의 망치소리에서 새로운 디자인 철학에 눈을 떴듯이, 내일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누군가는 이곳 포마 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새로운 영감과 벼락같이 마주하는 기적을 맛볼 수도 있으리라. 물론 기자와 같은 일반인은 조개껍데기와 페라리가 연결되는 디자인의 깊고 넓은 세계를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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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

주소 :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 91
문의 : 02-3158-4661**

 

고양신문   [1286호] 2016년 08월 26일 (금) 19:04:50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사람 속으로] 2~3년 망치질해 모형차 만들어…하도 두드려 팔 골절됐죠

 

‘자동차 미술관’ 세운 박종서 전 현대차 디자인연구소장

그는 ‘자동차 인생 40년’을 달리며 얻은 깨달음과 꿈을 한자리에 ‘주차’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69)씨는 최근 사재를 털어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을 세웠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에 문을 연 ‘FOMA’(Form Of Motors and Arts)다. 1487㎡ 부지에 1층은 전시장·작업장, 2층은 집무실·연구실로 꾸몄다. 이달 초 찾아간 미술관은 화려한 완성차 전시장이 아니었다. 차 한 대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얘기와 디자인의 본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이탈리아 수제 명품차인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 등의 실물 크기 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박 관장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한편에는 자동차의 4분의 1 크기, 일대일 크기로 만든 클레이 모델이 하나씩 있었다. “실제로 자동차 디자인을 할 때 디지털 모델링을 한 후 여러 크기의 클레이 모델을 만들어 봅니다.” 그가 디자인한 ‘티뷰론’은 금빛 광택이 나는 초록색을 띠었다. 풍뎅이 색과 흡사한 페인트를 특별 주문해 폐차된 티뷰론에 입혔다. 그는 전시장의 거의 모든 전시물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특히 수제 명품차 모형은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carrozzeria)에서 직접 망치질을 배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퇴임한 뒤인 2008년부터 미술관을 구상해 2013년 첫 삽을 떴다.

 
 
 박종서 관장이 FOMA에 전시된 ‘티뷰론’에 탑승했다. 그는 이 차에 풍뎅이 색깔을 입히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주문해 도색했다. 

박종서 관장이 FOMA에 전시된 ‘티뷰론’에 탑승했다. 그는 이 차에 풍뎅이 색깔을 입히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주문해 도색했다. 

 
 

Q : 망치질로만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A : “2004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을 처음 가 보고 전율을 느꼈다. 수백억원짜리 명품차인데 도면이 없었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틀 위에 철판을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렸다. 철판이 휘어지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곡면이 곧 디자인이 됐다. 이제라도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이탈리아에 여러 번 가 장인들에게 망치질을 배웠다. 그러곤 일대일 크기 모형들을 만들어 나갔다.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은 실제 이 차를 만든 세르지오 스칼리에티(1920~2011)의 아들이자 자동차 장인인 오스카 스칼리에티의 지도를 받아 제작했다. 한 작품에 2~3년씩 걸렸다. 하도 두드려서 오른팔이 골절됐을 땐 왼팔로 두드렸다. 시골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만들었는데 망치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해 작업장을 여러 번 옮겨야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돌부리’에 한 번 걸려 넘어지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박 관장은 국내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다. 197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5년간 티뷰론·아반떼·싼타페 등을 디자인하면서 국내 자동차 디자인의 초석을 다졌다. 이런 공로로 93년 대통령 표창, 99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기사 이미지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질의 :‘돌부리’는 어떤 의미인가. 응답 :“2004년 초 얼굴에 마비 증상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회사도 그만뒀다. 종양은 성공적으로 제거됐지만 수술 중 신경 일부가 손상된 탓에 눈이 잘 감기지 않았다. 그 뒤 이탈리아 공방에서 배운 망치질이 치료약이 됐다. 잡념을 떨쳐냈고, 건강도 서서히 회복됐다. 오히려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 값진 경험이 됐다.” 그는 그해 병마와 싸우면서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을 맡았고 1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이미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든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 

이미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든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Q : 전 재산을 털어 미술관을 지었다던데.

A :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 50억원이 들었다. 미술관은 내가 자동차 공방에서 보고 배운 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멋진 완성차는 거리에서, 자동차 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의 디자인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고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Q : 편안한 노년 대신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A : “미술관을 짓는다니까 아내는 ‘우리 죽고 난 뒤에 돈이 아니라 가치를 남기자’며 지지했다. 개인이 미술관을 짓는 길은 험난했지만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지난달 27일 경기도에서 1종 미술관 허가를 받았는데 감격스럽다.” 박 관장은 1947년 경기도 이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꿈이 싹을 틔운 건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수업 때 받은 칭찬이었다. “태극기를 직사각형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접힌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림을 본 선생님이 제게 예술적 재능을 키워보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Q : 그림을 정식으로 배웠나.

A : “미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시골에는 놀 거리가 참 많다. 냇가의 촉촉한 흙을 빚어 집·학교·도로를 만들곤 했다. 마을 하나가 생기는데 도구는 손과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했다. 중·고교는 서울에서 다녔는데 그때도 공부보다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 71년 홍익대 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전선에서 6년간 TV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꿨다. 정부 지원으로 3개월간 일본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때 그의 작품이 일본 잡지에 실렸다. 현대차 관계자가 그걸 보고 입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Q : 당시 국내는 자동차 디자인 불모지 아니었나.**

A : “67년 설립된 현대차는 75년부터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포니를 생산하고 있었다. 국내엔 자동차 디자인을 배울 곳이 없었다. 입사 초반에 회사의 지원을 받아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자동차디자인과로 1년간 연수를 떠났다. 처음엔 내 그림을 본 교수가 ‘oriental line(동양적인 선)’이라고 지적했다. 그 뒤 예쁘게 그리지 않고 내 생각을 담아 그리자 평가도 달라졌다.”

 

 

Q : 첫 번째로 디자인한 차는 뭐였나.

A : “90년에 나온 스쿠프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레저붐이 불었는데 젊은 층을 겨냥한 ‘스포츠카’였다. 미국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그때부터 자동차 디자인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Q : 디자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A : “자연에서 받은 감동이 자연스럽게 나의 연필 끝에서 그려질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티뷰론(96년)과 싼타페(2000년)는 바다에서 용솟음치는 고래의 선을 응용해 디자인했다. 아반떼(95년)의 후면 램프는 곤충의 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디자인의 답은 자연에 있다.”

 

 

Q : 지금도 디자인을 하나.

A :“스케치북에 이것저것 그리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동차를 그릴 때가 있다. 평생 하다 보니 떨어지기 힘든가 보다. 그리고 컴퓨터보다는 역시 손맛이다.” 그는 “디자인한 차가 제품으로 나오기까지 3년이 걸린다.

 

 
 

따라서 세상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측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측 능력의 비결로 다양한 ‘독서’를 꼽았다.

 
 

 

Q : 요즘 자동차 디자인을 평가한다면.

A : “불필요한 장식과 기능을 가진 차가 많다. 중량만 차지해 연료 소비가 많을 뿐이다. 제품의 기능을 알기 쉽게 해주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줄이기 디자인’에 해법이 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월간 디자인 2016년 7월 FOMA 기사


 
 
 
 

5월의 어느 날 경기도 고양을 찾았다. 종로를 지나 북가좌동을 거쳐 가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자동차 미술관이 들어서기에는 의외인 장소다. 신시가지 조성으로 길 닦기가 한창이라 한참 헤맨 뒤 야트막한 구릉의 오솔 길을 넘자 새빨간 건축물의 파사드가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작은 놀람이다. 사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꼼꼼하게 따지고 재는 스타 일이 아니다. 작업실을 구할 때조차 우연히 지나 가던 길의 느낌이 좋아 동네 복덕방에서 추천하는 매물을 보자마자 샀던 일화가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배어 나온다. 직접 맞닥뜨린 미술관은 예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동우건축 이용익 건축가의 거친 한 획으로 시작한 건축은 패시브 공법으로 마무리된, 자연속에 녹아든 형태를 갖췄다. 모교인 RCA 강의에서 널리 알려진 자연 친화적 세계관을 대입한 건축물 같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 돌담은 착공을 위해 땅을 파다가 나온 암반으로 만들었고 지열과 태양열로 냉난방을 한다. 햇볕을 모아 광원으로 쓰는데 조명을 꺼도 일정 조도가 유지된다.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는 4mm 이상의 코어텐 강판을 썼는데, 10년 동안 풍화 작용으로 부식되다가 피막이 생성되면 부식이 멈추는 재질로 자동차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강판을 자르지 않고 접어서 걸었고 3겹 유리를 사용해 단열과 소음 차단에 힘썼다. 건축물을 감상하는 사이 그가 현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환하게 웃으며, 막 오른 3막의 연극 주인공처럼. “오느라 힘들었지? 일단 들어와. 이것부터 보자.” 시덥지 않은 격식 같은 건 도통 모르는 그가 손가락으로 현관 입구의 작품을 가리킨다. 정세영 회장을 ‘나의 대장’이라 부르며 한국 자동차의 한 획을 그었던 성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 했다. 작품을 보니 알루미늄 동판 위에 정밀하게 새긴 패턴이 드러나 있다. 토리노는 원래 갑옷 만 드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화약의 발명으로 관련 산업이 쇠퇴하던 중 피아트가 들어서면서 장인들이 자동차 제작으로 대거 빠지게 되었다. 시계를 좋아한다면 브레게의 기요세(guilloche) 다이얼을 떠올리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출입구를 지나면 로비 전시실이 다가온다. 예의 익숙한 포니 모델의 청동 부조와 동판 아트워크, 신형 스포티지 목업 모델이 자리했다. 떨어지는 꽃잎 과 목재를 깎아 특수 도장으로 처리한 프로펠러가 묘하게 닮았다.

 
 
 
 
 

고집과 열정의 화신 박종서 디자이너가 평생을 꿈꾸던 공간 FOMA(Forms Of Motors and Arts). 보고 만지고 쓰다듬는 생생한 전시 기법을 내세우는 이곳은 디자이너가 설립한 최초의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인데 세상 자연 만물의 꼴(Forma) 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자동차를 디자인한 그의 예술혼이 곳곳에 스며 있다. 왜 아니 그럴까. 모든 전시품은 그가 평생에 걸쳐 직접 구상하고 만든 작품이다.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공법으로 직접 철사로 자동차의 선을 본뜨고 망치로 알루미늄을 두드려 만들었다. 나 역시 티뷰론을 몰고 다니던 시절부터 그를 존경했으니 햇수로 20년이 넘었지만, 포니가 나온 첫해가 1975년이니 켜켜 이 쌓인 놀랄 만한 스토리 앞에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속살 같은 공간 에서 나만의 추억을 되새기는 감동에 빠져든다. 메인 전시실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구조 다. 규모는 상당했다. 거대한 앵무조개의 단면부 터 천장에 걸린 호랑가시나무잎의 조형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열정을 숨기지 못하는 기질을 잘 아는 터라 첫 설명 작이 궁금했는데 그는 형이상학적인 자줏빛 오브제를 쓰다듬으며 입 을 열었다. “이 작품은 말야, 소라가 파도에 씻 겨 닳아서 속만 남은 거야. 내가 곡선에 미쳐 있 을 때 처음에는 구리로 만들었지. 한번 제대로 닦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그 옆에 놓인 작품 은 2004년에 수령 200년 된 소나무를 가져와 깎았어. 그때부터 10년 동안 여름만 되면 옻칠을 입혔어.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 칠 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일본 오사카 근처에 있는 와카야마에 가서 공부했어. 일부러 색상을 내려 고 한 게 아니라 덧칠하며 자연스럽게 배어난 색감이야. 곡선이 정말 아름답지? 이리 와서 만져 보라니까.” 그 흔한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조차 없다. 아니 오히려 FOMA에서는 만지고 톡톡 두드리고 껴안으며 영감을 얻기를 권장한다. 거대한 앵무조개를 바라보며 그의 눈치를 보니 역시나 만져보고 형상을 느껴보란다. 거대한 작품은 앵무조개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레오나르도 피보 나치가 발견한 피보나치 수열을 상징한다. 수학 적으로 풀어낸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려고 앵무 조개를 반으로 잘라 레이저로 스캔한 뒤 3가지 크기로 제작했다. 3D 프린터로 마치 퍼즐처럼 잘라 내 조립했는데 유리 섬유를 덮어 강화시켜서 세우 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만져보니 묘한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사람 은 없어. 같은 탄소지만 연필의 흑연은 종이로 옮겨져 과학자가 될 기초가 되지만 다이아몬드는 그렇지 못해. 연필은 마음을 표현하지.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랄까? 난 아이들이 내 작품을 보고 만지며 신선한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어. 작품 의도를 오해하는 것도 괜찮아. 그것 역시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될 테니까.” 벽면에는 포니의 목형이 있다. 아직 미완성 작품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만지고 있다. 목형을 만들고 남은 나무 틀을 벽에 붙이고 포니의 탄력 곡선을 분석해보려고 철사로 만들어봤다. 토리노로 떠나길 수차례, 주지아로를 통해 모델 렌더링을 새롭게 받고 원도면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청사진을 구했다. 기록도 남지 않은 포니의 복원을 그렇게 이뤄냈다. 그가 살려낸 도면을 보니 직선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 말린 탄력적인 곡선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는 포니야말로 주지아로의 전성기에 태어난 군더더기 없는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직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가 고증해 컴퓨터로 그려낸 도면을 보니 이해가 간다. 옆에는 토리노에서 들여온, 포니를 그릴때 썼던 제도기가 놓여 있다. 실제 암을 휘휘 돌려보니 용수철의 탄성으로 절도있게 움직이는 느낌이 근사하다.

 
 
 
 
 

드디어 카로체리아. 현존하는 자동차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1958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가 카로체리아의 옛 방식 그대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 전시되어 있다. 박종서 디자이너는 세르지오 스칼리에티를 가장 존경 하는 디자이너로 손꼽는다. 도면 없이 차를 만들 던 시절, 철사를 휘어 우아한 선으로 빚어낸 자동차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보디는 무게를 줄이 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옆에 놓인 1938 년형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밀리아 로드스터 모델을 바라보며 “비행기를 하나 만들어서 천 장에 걸어놓고 싶은데…”라고 혼잣말을 하는 그 다. 1939년형 아우토 유니온 D 타입은 히틀러가 ‘나의 그녀’라고 부르던 너무나 유명한 모델. 어 떤 홀은 공기가 들어오고 어떤 홀은 나가는 식의 벤트 홀의 형상 작업이 너무나 어려워 포기했다가 겨우 살려낸 모델이다. 갑자기 그가 벽에 걸린 이탈리아 사내들의 액자를 바라보며 진중해진다. “길베르니 아프로, 로베르토 빌라, 바리니 알베 르토 삼인방이야. 토리노 카로체리아의 망치쟁이 들이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없던 시절 오직 손과 눈의 감각으로 금속을 두드려 아름다운 차체를 만든 사람들이야. 사진 좀 봐봐. 꼭 망치처럼 생겼지? 하나같이 70세가 넘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주석을 녹여 손으로 쓱 문지르는데 아주 놀랐지.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차를 ‘아트’라고 부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똑같은 작업으로 이렇게 자동차를 만들어낸 거야.” 사실 박종서 디자이너는 카로체리아 작업 방식을 보고 나서야 평생 동안 궁금했던 비밀이 풀렸다고 말한다. 세르지오 스칼리에티의 과거를 역추 적하니 아들인 오스카 스칼리에티와 조우했고, 그의 안내로 12살 때부터 스칼리에티 밑에서 75 년 동안 망지질만 했던 사람을 만났다. 그가 스 칼리에티의 유산을 계승한 카로체리아였고, 벽에 걸린 철사를 휘어 만든 모델을 보고 주저 앉고 싶었다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낸 차는 도면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넋이 빠질 지경이었 다. 내게 익숙한 콘셉트카인 HCD-1 모델은 레진 컬러가 무척 예뻤고 최신형 쏘나타 화이트 보디가 벽에 걸려 있었으며, 포니 시절에 충돌 테스트 에 쓰인 퇴역한 더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호랑가시나무 잎 조형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으며 바우하우스의 정수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파이버글라스 조립 오브제가 세팅되어 있었다. 최근에 구형 티뷰론만 넉 대를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니 내 가 가장 사랑했던 국산 차인 티뷰론이 새롭게 전시장에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FOMA를 어떻게 운영할 거냐고? 사실 모르겠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둘 거야. 그러면 운명적인 길이 나타나겠지. 세상 모든 게 그런 것 같아. 노력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노력은 항상 운명과 같이 가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 길이 또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내가 카로체리아를 보고 놀라 나자빠진 것처럼 내가 만든 이 모든 게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어. 생각의 전환을 이뤄내도록 노력 해야겠지. 새로운 전시품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말야.” 자동차 박물관이란 이름은 익숙하다. 하지만 FOMA는 움직인다. 진부한 유물을 박제한 곳이 아닌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이다. 월간 디자인은 디자이너 박종서와 함께 예비 자동 차 디자이너를 위한 생생한 투어 프로그램을 준 비 중이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monthlydesign 공지를 참고하라.

글: 최민관 기자,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