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으로] 2~3년 망치질해 모형차 만들어…하도 두드려 팔 골절됐죠

 

‘자동차 미술관’ 세운 박종서 전 현대차 디자인연구소장

그는 ‘자동차 인생 40년’을 달리며 얻은 깨달음과 꿈을 한자리에 ‘주차’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69)씨는 최근 사재를 털어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을 세웠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에 문을 연 ‘FOMA’(Form Of Motors and Arts)다. 1487㎡ 부지에 1층은 전시장·작업장, 2층은 집무실·연구실로 꾸몄다. 이달 초 찾아간 미술관은 화려한 완성차 전시장이 아니었다. 차 한 대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얘기와 디자인의 본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이탈리아 수제 명품차인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 등의 실물 크기 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박 관장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한편에는 자동차의 4분의 1 크기, 일대일 크기로 만든 클레이 모델이 하나씩 있었다. “실제로 자동차 디자인을 할 때 디지털 모델링을 한 후 여러 크기의 클레이 모델을 만들어 봅니다.” 그가 디자인한 ‘티뷰론’은 금빛 광택이 나는 초록색을 띠었다. 풍뎅이 색과 흡사한 페인트를 특별 주문해 폐차된 티뷰론에 입혔다. 그는 전시장의 거의 모든 전시물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특히 수제 명품차 모형은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carrozzeria)에서 직접 망치질을 배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퇴임한 뒤인 2008년부터 미술관을 구상해 2013년 첫 삽을 떴다.

 
 
 박종서 관장이 FOMA에 전시된 ‘티뷰론’에 탑승했다. 그는 이 차에 풍뎅이 색깔을 입히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주문해 도색했다. 

박종서 관장이 FOMA에 전시된 ‘티뷰론’에 탑승했다. 그는 이 차에 풍뎅이 색깔을 입히기 위해 특수 페인트를 주문해 도색했다. 

 
 

Q : 망치질로만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A : “2004년 이탈리아의 자동차 공방을 처음 가 보고 전율을 느꼈다. 수백억원짜리 명품차인데 도면이 없었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틀 위에 철판을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렸다. 철판이 휘어지며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곡면이 곧 디자인이 됐다. 이제라도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이탈리아에 여러 번 가 장인들에게 망치질을 배웠다. 그러곤 일대일 크기 모형들을 만들어 나갔다.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은 실제 이 차를 만든 세르지오 스칼리에티(1920~2011)의 아들이자 자동차 장인인 오스카 스칼리에티의 지도를 받아 제작했다. 한 작품에 2~3년씩 걸렸다. 하도 두드려서 오른팔이 골절됐을 땐 왼팔로 두드렸다. 시골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만들었는데 망치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항의해 작업장을 여러 번 옮겨야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돌부리’에 한 번 걸려 넘어지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박 관장은 국내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다. 197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25년간 티뷰론·아반떼·싼타페 등을 디자인하면서 국내 자동차 디자인의 초석을 다졌다. 이런 공로로 93년 대통령 표창, 99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기사 이미지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질의 :‘돌부리’는 어떤 의미인가. 응답 :“2004년 초 얼굴에 마비 증상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회사도 그만뒀다. 종양은 성공적으로 제거됐지만 수술 중 신경 일부가 손상된 탓에 눈이 잘 감기지 않았다. 그 뒤 이탈리아 공방에서 배운 망치질이 치료약이 됐다. 잡념을 떨쳐냈고, 건강도 서서히 회복됐다. 오히려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 값진 경험이 됐다.” 그는 그해 병마와 싸우면서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장을 맡았고 1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이미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든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 

이미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든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의 모형.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자동차의 탄생 과정을 만날 수 있는 FOMA의 실내전경. [사진 FOMA]
 

 
 

Q : 전 재산을 털어 미술관을 지었다던데.

A :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 50억원이 들었다. 미술관은 내가 자동차 공방에서 보고 배운 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멋진 완성차는 거리에서, 자동차 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의 디자인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고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Q : 편안한 노년 대신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A : “미술관을 짓는다니까 아내는 ‘우리 죽고 난 뒤에 돈이 아니라 가치를 남기자’며 지지했다. 개인이 미술관을 짓는 길은 험난했지만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지난달 27일 경기도에서 1종 미술관 허가를 받았는데 감격스럽다.” 박 관장은 1947년 경기도 이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꿈이 싹을 틔운 건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수업 때 받은 칭찬이었다. “태극기를 직사각형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접힌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림을 본 선생님이 제게 예술적 재능을 키워보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Q : 그림을 정식으로 배웠나.

A : “미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시골에는 놀 거리가 참 많다. 냇가의 촉촉한 흙을 빚어 집·학교·도로를 만들곤 했다. 마을 하나가 생기는데 도구는 손과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했다. 중·고교는 서울에서 다녔는데 그때도 공부보다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 71년 홍익대 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대한전선에서 6년간 TV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 자동차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꿨다. 정부 지원으로 3개월간 일본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는데 그때 그의 작품이 일본 잡지에 실렸다. 현대차 관계자가 그걸 보고 입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Q : 당시 국내는 자동차 디자인 불모지 아니었나.**

A : “67년 설립된 현대차는 75년부터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포니를 생산하고 있었다. 국내엔 자동차 디자인을 배울 곳이 없었다. 입사 초반에 회사의 지원을 받아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자동차디자인과로 1년간 연수를 떠났다. 처음엔 내 그림을 본 교수가 ‘oriental line(동양적인 선)’이라고 지적했다. 그 뒤 예쁘게 그리지 않고 내 생각을 담아 그리자 평가도 달라졌다.”

 

 

Q : 첫 번째로 디자인한 차는 뭐였나.

A : “90년에 나온 스쿠프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레저붐이 불었는데 젊은 층을 겨냥한 ‘스포츠카’였다. 미국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그때부터 자동차 디자인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Q : 디자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A : “자연에서 받은 감동이 자연스럽게 나의 연필 끝에서 그려질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티뷰론(96년)과 싼타페(2000년)는 바다에서 용솟음치는 고래의 선을 응용해 디자인했다. 아반떼(95년)의 후면 램프는 곤충의 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디자인의 답은 자연에 있다.”

 

 

Q : 지금도 디자인을 하나.

A :“스케치북에 이것저것 그리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동차를 그릴 때가 있다. 평생 하다 보니 떨어지기 힘든가 보다. 그리고 컴퓨터보다는 역시 손맛이다.” 그는 “디자인한 차가 제품으로 나오기까지 3년이 걸린다.

 

 
 

따라서 세상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측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측 능력의 비결로 다양한 ‘독서’를 꼽았다.

 
 

 

Q : 요즘 자동차 디자인을 평가한다면.

A : “불필요한 장식과 기능을 가진 차가 많다. 중량만 차지해 연료 소비가 많을 뿐이다. 제품의 기능을 알기 쉽게 해주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줄이기 디자인’에 해법이 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