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6년 7월 FOMA 기사


 
 
 
 

5월의 어느 날 경기도 고양을 찾았다. 종로를 지나 북가좌동을 거쳐 가는 서울 외곽 지역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자동차 미술관이 들어서기에는 의외인 장소다. 신시가지 조성으로 길 닦기가 한창이라 한참 헤맨 뒤 야트막한 구릉의 오솔 길을 넘자 새빨간 건축물의 파사드가 나타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작은 놀람이다. 사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꼼꼼하게 따지고 재는 스타 일이 아니다. 작업실을 구할 때조차 우연히 지나 가던 길의 느낌이 좋아 동네 복덕방에서 추천하는 매물을 보자마자 샀던 일화가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배어 나온다. 직접 맞닥뜨린 미술관은 예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동우건축 이용익 건축가의 거친 한 획으로 시작한 건축은 패시브 공법으로 마무리된, 자연속에 녹아든 형태를 갖췄다. 모교인 RCA 강의에서 널리 알려진 자연 친화적 세계관을 대입한 건축물 같았다. 이를테면 이런 것. 돌담은 착공을 위해 땅을 파다가 나온 암반으로 만들었고 지열과 태양열로 냉난방을 한다. 햇볕을 모아 광원으로 쓰는데 조명을 꺼도 일정 조도가 유지된다. 노출 콘크리트 표면에는 4mm 이상의 코어텐 강판을 썼는데, 10년 동안 풍화 작용으로 부식되다가 피막이 생성되면 부식이 멈추는 재질로 자동차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강판을 자르지 않고 접어서 걸었고 3겹 유리를 사용해 단열과 소음 차단에 힘썼다. 건축물을 감상하는 사이 그가 현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환하게 웃으며, 막 오른 3막의 연극 주인공처럼. “오느라 힘들었지? 일단 들어와. 이것부터 보자.” 시덥지 않은 격식 같은 건 도통 모르는 그가 손가락으로 현관 입구의 작품을 가리킨다. 정세영 회장을 ‘나의 대장’이라 부르며 한국 자동차의 한 획을 그었던 성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 했다. 작품을 보니 알루미늄 동판 위에 정밀하게 새긴 패턴이 드러나 있다. 토리노는 원래 갑옷 만 드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화약의 발명으로 관련 산업이 쇠퇴하던 중 피아트가 들어서면서 장인들이 자동차 제작으로 대거 빠지게 되었다. 시계를 좋아한다면 브레게의 기요세(guilloche) 다이얼을 떠올리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출입구를 지나면 로비 전시실이 다가온다. 예의 익숙한 포니 모델의 청동 부조와 동판 아트워크, 신형 스포티지 목업 모델이 자리했다. 떨어지는 꽃잎 과 목재를 깎아 특수 도장으로 처리한 프로펠러가 묘하게 닮았다.

 
 
 
 
 

고집과 열정의 화신 박종서 디자이너가 평생을 꿈꾸던 공간 FOMA(Forms Of Motors and Arts). 보고 만지고 쓰다듬는 생생한 전시 기법을 내세우는 이곳은 디자이너가 설립한 최초의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인데 세상 자연 만물의 꼴(Forma) 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자동차를 디자인한 그의 예술혼이 곳곳에 스며 있다. 왜 아니 그럴까. 모든 전시품은 그가 평생에 걸쳐 직접 구상하고 만든 작품이다.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공법으로 직접 철사로 자동차의 선을 본뜨고 망치로 알루미늄을 두드려 만들었다. 나 역시 티뷰론을 몰고 다니던 시절부터 그를 존경했으니 햇수로 20년이 넘었지만, 포니가 나온 첫해가 1975년이니 켜켜 이 쌓인 놀랄 만한 스토리 앞에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속살 같은 공간 에서 나만의 추억을 되새기는 감동에 빠져든다. 메인 전시실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구조 다. 규모는 상당했다. 거대한 앵무조개의 단면부 터 천장에 걸린 호랑가시나무잎의 조형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열정을 숨기지 못하는 기질을 잘 아는 터라 첫 설명 작이 궁금했는데 그는 형이상학적인 자줏빛 오브제를 쓰다듬으며 입 을 열었다. “이 작품은 말야, 소라가 파도에 씻 겨 닳아서 속만 남은 거야. 내가 곡선에 미쳐 있 을 때 처음에는 구리로 만들었지. 한번 제대로 닦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그 옆에 놓인 작품 은 2004년에 수령 200년 된 소나무를 가져와 깎았어. 그때부터 10년 동안 여름만 되면 옻칠을 입혔어.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 칠 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일본 오사카 근처에 있는 와카야마에 가서 공부했어. 일부러 색상을 내려 고 한 게 아니라 덧칠하며 자연스럽게 배어난 색감이야. 곡선이 정말 아름답지? 이리 와서 만져 보라니까.” 그 흔한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조차 없다. 아니 오히려 FOMA에서는 만지고 톡톡 두드리고 껴안으며 영감을 얻기를 권장한다. 거대한 앵무조개를 바라보며 그의 눈치를 보니 역시나 만져보고 형상을 느껴보란다. 거대한 작품은 앵무조개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레오나르도 피보 나치가 발견한 피보나치 수열을 상징한다. 수학 적으로 풀어낸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려고 앵무 조개를 반으로 잘라 레이저로 스캔한 뒤 3가지 크기로 제작했다. 3D 프린터로 마치 퍼즐처럼 잘라 내 조립했는데 유리 섬유를 덮어 강화시켜서 세우 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만져보니 묘한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사람 은 없어. 같은 탄소지만 연필의 흑연은 종이로 옮겨져 과학자가 될 기초가 되지만 다이아몬드는 그렇지 못해. 연필은 마음을 표현하지.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랄까? 난 아이들이 내 작품을 보고 만지며 신선한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어. 작품 의도를 오해하는 것도 괜찮아. 그것 역시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될 테니까.” 벽면에는 포니의 목형이 있다. 아직 미완성 작품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만지고 있다. 목형을 만들고 남은 나무 틀을 벽에 붙이고 포니의 탄력 곡선을 분석해보려고 철사로 만들어봤다. 토리노로 떠나길 수차례, 주지아로를 통해 모델 렌더링을 새롭게 받고 원도면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청사진을 구했다. 기록도 남지 않은 포니의 복원을 그렇게 이뤄냈다. 그가 살려낸 도면을 보니 직선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 말린 탄력적인 곡선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는 포니야말로 주지아로의 전성기에 태어난 군더더기 없는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직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가 고증해 컴퓨터로 그려낸 도면을 보니 이해가 간다. 옆에는 토리노에서 들여온, 포니를 그릴때 썼던 제도기가 놓여 있다. 실제 암을 휘휘 돌려보니 용수철의 탄성으로 절도있게 움직이는 느낌이 근사하다.

 
 
 
 
 

드디어 카로체리아. 현존하는 자동차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1958년형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가 카로체리아의 옛 방식 그대로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 전시되어 있다. 박종서 디자이너는 세르지오 스칼리에티를 가장 존경 하는 디자이너로 손꼽는다. 도면 없이 차를 만들 던 시절, 철사를 휘어 우아한 선으로 빚어낸 자동차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보디는 무게를 줄이 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옆에 놓인 1938 년형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밀리아 로드스터 모델을 바라보며 “비행기를 하나 만들어서 천 장에 걸어놓고 싶은데…”라고 혼잣말을 하는 그 다. 1939년형 아우토 유니온 D 타입은 히틀러가 ‘나의 그녀’라고 부르던 너무나 유명한 모델. 어 떤 홀은 공기가 들어오고 어떤 홀은 나가는 식의 벤트 홀의 형상 작업이 너무나 어려워 포기했다가 겨우 살려낸 모델이다. 갑자기 그가 벽에 걸린 이탈리아 사내들의 액자를 바라보며 진중해진다. “길베르니 아프로, 로베르토 빌라, 바리니 알베 르토 삼인방이야. 토리노 카로체리아의 망치쟁이 들이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없던 시절 오직 손과 눈의 감각으로 금속을 두드려 아름다운 차체를 만든 사람들이야. 사진 좀 봐봐. 꼭 망치처럼 생겼지? 하나같이 70세가 넘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주석을 녹여 손으로 쓱 문지르는데 아주 놀랐지.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차를 ‘아트’라고 부르더라고. 그래서 내가 똑같은 작업으로 이렇게 자동차를 만들어낸 거야.” 사실 박종서 디자이너는 카로체리아 작업 방식을 보고 나서야 평생 동안 궁금했던 비밀이 풀렸다고 말한다. 세르지오 스칼리에티의 과거를 역추 적하니 아들인 오스카 스칼리에티와 조우했고, 그의 안내로 12살 때부터 스칼리에티 밑에서 75 년 동안 망지질만 했던 사람을 만났다. 그가 스 칼리에티의 유산을 계승한 카로체리아였고, 벽에 걸린 철사를 휘어 만든 모델을 보고 주저 앉고 싶었다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낸 차는 도면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넋이 빠질 지경이었 다. 내게 익숙한 콘셉트카인 HCD-1 모델은 레진 컬러가 무척 예뻤고 최신형 쏘나타 화이트 보디가 벽에 걸려 있었으며, 포니 시절에 충돌 테스트 에 쓰인 퇴역한 더미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천장에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호랑가시나무 잎 조형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으며 바우하우스의 정수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파이버글라스 조립 오브제가 세팅되어 있었다. 최근에 구형 티뷰론만 넉 대를 구입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니 내 가 가장 사랑했던 국산 차인 티뷰론이 새롭게 전시장에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FOMA를 어떻게 운영할 거냐고? 사실 모르겠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둘 거야. 그러면 운명적인 길이 나타나겠지. 세상 모든 게 그런 것 같아. 노력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노력은 항상 운명과 같이 가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그 길이 또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내가 카로체리아를 보고 놀라 나자빠진 것처럼 내가 만든 이 모든 게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어. 생각의 전환을 이뤄내도록 노력 해야겠지. 새로운 전시품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말야.” 자동차 박물관이란 이름은 익숙하다. 하지만 FOMA는 움직인다. 진부한 유물을 박제한 곳이 아닌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이다. 월간 디자인은 디자이너 박종서와 함께 예비 자동 차 디자이너를 위한 생생한 투어 프로그램을 준 비 중이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monthlydesign 공지를 참고하라.

글: 최민관 기자,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