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은 예술이다.

 
 
 [이데일리 오토in 김하은 기자] 현대자동차 디자인을 이끌던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현대차 퇴사 이후 이탈리아 까로체리아의 세계를 경험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원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그리고 최근 그는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새로운 길에 섰다.

[이데일리 오토in 김하은 기자] 현대자동차 디자인을 이끌던 디자인연구소장 겸 부사장이었던 박종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현대차 퇴사 이후 이탈리아 까로체리아의 세계를 경험하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원장으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그리고 최근 그는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새로운 길에 섰다.

 
 

박종서 관장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산자락에 위치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으나 미술관으로 진입하는 길이 아파트 단지 공사장과 엉켜 있어 미술관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갈 수 없었다. 공사장을 통과해 산자락 오솔길을 지나며 마치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 역시 난청을 호소할 정도.

그렇게 오솔길을 조심스럽게 지나는 순간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FOMA(Form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려하다기 보다는 현대적인 이미지의 미술관은 1,487㎡ 부지에 1층은 전시장, 작업장, 2층은 집무실과 연구실로 꾸며져 있다.

 
 
 미술관 전시구역에는 박종서 관장이 망치를 들고 직접 두드려 만들었다는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를 비롯해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티뷰론의 콘셉 모델이었던 HCD-1 모형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박종서 관장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기자를 환영했다.

미술관 전시구역에는 박종서 관장이 망치를 들고 직접 두드려 만들었다는 페라리 250 테스타로사’(1958년)를 비롯해 ‘알파로메오 8C 2900B 밀레 밀리아 로드스터’(1938년), ‘아우토 우니온 D타입’(1939년)과 다양한 전시품들이 눈길을 끌었고, 티뷰론의 콘셉 모델이었던 HCD-1 모형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을 둘러보던 중 박종서 관장이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기자를 환영했다.

 
 

무언가 가치를 남기고 싶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 미술관의 설립 이유가 궁금했다. 박종서 관장은 “다들 디자인 스튜디오를 세우거나 교수 생활을 유지하지 왜 미술관을 세우냐고 질문했다”라며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듯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언제나 볼 수 있는 완성된 멋진 자동차가 아니라 디자인의 영감을 얻고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걸 구현하는 과정과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후학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족들의 의견도 큰 힘이 되었다. 박종서 관장의 아내 역시 ‘우리는 돈이 아닌 가치를 남기는 것이 좋다’라며 미술관 설립에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이에 50억이라는 큰 규모를 투자할 수 있었고, 미술관 관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산업 디자인의 가치를 느끼다.

박종서 관장의 전공은 사실 산업 디자인이나 자동차 디자인이 아닌 ‘공예’다. 그는 “사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시절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며 웃었다. 사실 그는 조각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잠시 후 박 관장은 “그런데 사는 게 모두 생각하고 예상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언젠가 삼각지 미군 부대 인근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잡지를 우연하게 구했고, 그 잡지를 보면서 산업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알게 되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업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독학으로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고 습득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그때 현대자동차 역시 차량 제작 기술 등에서 한국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외부에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회사 내에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

박종서 관장은 현대 입사 후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유학을 떠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대에 입사를 하니 디자인에 관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해외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 영국에 출장을 가서 한 박물관에서 클레이 모델을 처음 보게 되었고,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현대차에서도 ‘선진화된 자동차 디자인’의 필요성을 느낀 만큼 박종서 관장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박종서 관장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대해 “학교와 내가 서로를 새롭게 느낀 기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학교에 다닌 만큼 선진화된 디자인 프로세스야 자연스럽게 배웠으나 더 크게 느꼈던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특히 유럽의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문화, 향유하는 생활, 패턴 등을 함께하고 관찰하며 견문을 넓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 시절 친구들은 지금도 도움을 받는 상황이다”라며 웃었다. 그는 영국에서을 소중히 생각하며 “한 브랜드를 대표해서 선진화된 문물과 문화를 배웠다는 생각이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곳에서도 ‘디자인은 혼자서 이뤄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자동차의 디자인을 지휘하며 새로운 수 많은 디자이너들을 해외로 보내 다양한 경험과 지식, 감각을 쌓도록 했다.

강인한 곡선을 추구했던 박종서 풍 디자인

박종서 관장이 현대차에서 그려냈던 차량으로는 스쿠프, 티뷰론, 싼타페 등이다. 그가 그린 현대차 디자인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현대는 엔지니어링으로 크거나 원천 기술이 풍부한 브랜드는 아니었다”라며 “대중적인 엔지니어링 위에 어떤 매력적인 형태를 제공하느냐, 그리고 실내 공간을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하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그는 “타 브랜드와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라며 ‘힘있는 곡선이 돋보이는 고래의 실루엣’을 담아내는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를 회상하던 박종서 관장은 “콘셉 디자인을 그려내고 클레이 모델로 구현하는 건 쉽지만 그걸 양산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며 “당시 현대차의 기술력을 대폭 발전시키며 원안에 가까운 금형을 제작한 엔지니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건 항상 불안하고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라며 “콘셉이 양산화 되는 과정도 걱정되고, 양산된 이후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라는 것 역시 큰 부담이 된다”라며 “이에 실수를 줄이기 위해 늘 엔지니어들과 함께 노력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다”며 웃었다.

자이너로서의 오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아쉬웠던 차량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 없이 아토스를 떠올렸다. 그는 “아토스는 당초 디자인 단계에서는 초소형 시티밴과 같은 상용 모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런데 마케팅에서는 소형차로 브랜딩을 하고 싶어했고 양산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마케팅, 엔지니어링, 상품 등의 요구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박종서 관장은 그 때 디자인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고 말했다.

한편 박종서 관장은 투스카니도 아쉬움이 남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스카니는 티뷰론과 터뷸런스를 이어가는 경쾌한 감각의 스포츠카 모델인데, 막상 디자인적으로 두 차량을 계승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뷰론 시리즈의 단점이었던 긴 오버행을 대폭 줄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라며 웃었다.

 
 
 
 

현대차와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도전

디자이너로서 일찍 은퇴를 선택한 박종서 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2000년대 초반, 그 때만 해도 난 현대차에 무척 오래 있었다고 생각했고 또 뇌종양과 같은 건강 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만 두는 것에 대해 고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술 이후 몸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새로운 걸 느끼고 싶어서 이탈리아를 찾았고,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을 알게 되었다”라며 웃었다.

그는 “예전에 테스타로사라던가 스칼리에티 등의 도면이나 설계도를 구하려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그런 자료는 없다’라며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며 “막상 까로체리아를 가보니 도면이 없는, 아니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며 까로체리아의 장인들을 마주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종서 관장은 “까로체리아의 장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라며 “그 때 난 ’내가 왜 지금 이제야 왔을까?’라는 생각과 ‘영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못 들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충격 그리고 이렇게 늦은 시기에 까로체리아를 방문했다는 것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그는 망치를 들었고, 철사를 엮은 틀 위에서 철판을 두드리며 책상에서는 그릴 수 없는 곡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까로체리아의 장인들은 곡선이 모든 디자인을 결정한다”라며 “그들은 ’직선은 존재하지 않고 중력에 의해 곡선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곡선의 미학을 그 어떤 브랜드, 어떤 작품보다 아름답게 디자인한다”라며 이태리 자동차 디자인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까로체리아를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은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아이덴티티가 사라지는 현재의 자동차 디자인

박종서 관장이 지금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단호했다. “지금의 디자인은 모두 같은 환경에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 간 아이덴티티가 사라지고 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아래에 디자인이 프로세스의 일부가 되었고, 어느새 그 본질이 흐려진 것 같다”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디자인 역시 예술의 한 갈래’라며 예술적 가치를 위한 고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요새 자동차 디자인은 모두 ‘유행하는 디자인’이다.”라며 “기업으로서 소비자에 비유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가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이끌고 유혹할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디자인을 해야 한다”라며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특히 박종서 관장은 디자인에 있어서 ‘덜어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도 절제해야 아름다운 것이다”라며 “너무 많은 것이 풍족한 이 시대를 사는 디자이너라면 조금 더 절제하고 덜어내는 디자인을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욕심에 본질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금씩 덜어낼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덜어내는 디자인 중 하나는 차체 크기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닌 차체를 작게 만들되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라며 “지금도 기아자동차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소울의 실내 부품을 모두 제거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더욱 넓은 공간을 가진 차량으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말하다

박종서 관장은 현재의 기업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금 당장의 판매도 중요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의 보편 타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장기적인 비전 대신 기업을 운영하는 임원들이 자신의 입신만을 위해 당장의 결과만을 위해 움직이고 그런 틀 속에서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이 휘둘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며 “입시라는 굴레에 예술마저도 공식화 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요새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물론 많은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타블렛으로 디자인을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라며 “디자이너들은 생산 효율화와 프로세스에 갇히는 바람에 자신이 하는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이를 구현하는 것 역시 너무 성급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은 것만이 아니라 제품을 구성하고 또 제작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품의 본질을 유지하는 기둥이다”라고 말하며 ‘본질적 가치로서의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이 가진 본질에 대해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라며 “나 역시도 이 공간에서 더 많은 후학들과 ‘좋은 디자인’의 가치를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FOMA (Forms of Motors and Arts) 자동차디자인미술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향뫼로 91(Tel: 02-3158-4661)

 

2016.08.24 10:50 | 김하은 기자 hani@ 이데일리